이석증
처음에는 빈혈인가 했다. 요사이 술도 안먹고(x) 덜먹고, 고기섭취도 안하고(x) 줄이고, 소식을 해서 그런가했다.
엊그제 아침, 잠에서 깨어 일어나려는데 천장이 빙글빙글 3.5초간 돌고돈다. 하마터면 일어서다 말고 고꾸라질 뻔 했다. 어쭈. 가끔 겪는 아찔한 현기증과는 분명히 차원이 다른데 뭐지? 2.7초간 걱정을 하다말고 방긋. 새 아침을 맞이한다.
오후들어 심각해졌다. 수안이와 낄낄거리며 잘 앉아 있다가 일어서려는데 4.3초간 또 벽면이 돌고돌더니또돈다. 이건 분명히 현기증이 아니다. 우선 좀 누워 생각해야겠다. 눕자 마자 다시 천장이 돌기 시작한다. 뭘 잘 못 먹은 건가? 태어나 처음 겪어보는 어지러움이다. 돌기가 멈추기를 기다렸다가 돌아 눕자 마자 다시 방바닥이 돌기 시작한다. 이거 심각하다.
내 나이 마흔다섯. 설마 벌써 생의 마감을 준비하라는 신호일까? 요즘 운동을 너무 무리하게 해서 뇌에 무리가 온 건 아닐까? 나도 모르게 어디 살짝 부딪혔는데 경미한 뇌출혈이 아닐까? 그러니까 뇌경색, 아니 뇌종양? 마침 눈치를 보며 슬금 흐르려는 눈물을 닦을 채비를 할까 돌아누우려는데 들어올린 내 팔마저 빙글빙글 돌기 시작한다. 아~ 어쩌라고.
"이거 이석증 같은데요. 이제 증상도 사라지고 했으니 뭐 약물치료도 소용이 없고... 현재 증상이 없으니 검사를 해 봐도 결과가 나올리 없고, 그래도 검사비는 들테고..."
이비인후과 의사 선생님이 다 낫고나서 왜 왔냐는 듯 나를 빤히 보시기에 나는 얼른 방긋 미소를 띄워 드린다.
"아. 네. 그럼 됐습니다. 다음에는 어지럽고 빙빙돌면 즉시 내원하여 검사도 받고 치료도 받고 하겠습니다."
"네, 꼭 그렇게 하세요."
'이석증' 무슨 사람 이름처럼 들리지만 귓속 반고리관?에 결석 같은것이 생겨 나타나는 증상이라고 한다.
사실, 일요일 오후부터는 증세가 나타나지 않았고 인터넷검색을 통해 내 병명을 대략 짐작할 수 있었지만 추가로 해야하는 조치가 있는지 확인하고자 병원을 찾았다.
증상이 아직 남아 있는 경우에는 약물등으로 치료 할 수 있으며, 사람에 따라 1~2일 후 자연치유 되기도 한다. 다만 이 증상은 치유 후에도 재발 확률이 높다니 맙소사. 혹시나 의사선생님께 이 증상이 있을 때 빨리 내원하여 치료를 받으면 향후 재발하지 않느냐고 질문했더니 그렇지 않다고 한다. 그럼 왜 빨리 와서 치료를 받아야 하는 거지? 의사선생님의 진지한 답변과 표정에 묘한 여운이 남는다.
뭐든 힘들고, 우짜든동 아프고, 근육이 굳고, 관절에서 소리가 나고, 허리 펴는게 힘들고, 이가 빠지고, 눈이 침침해지고, 이석증이라는 처음 들어보는 증상까지.
나이가 들어야 알게되는 인체의 변화가 씁씁하지만은 않다. 나도 이만큼 나이를 먹었구나. 이제부터라도 내 몸을 더 아끼고 소중히 다뤄야겠다는 생각이 그 씁쓸함을 대신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