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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내가 살고 있는 동네를 처음 알려준 사람은 M이모다. 진짜 이모는 아니고 엄마의 친구인 그녀를 나는 M이모라고 불렀다. M이모는 조금 특별한 방식으로 인생을 사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1970년대에 독일로 유학을 떠날 정도의 엘리트 여성이었지만 유학을 다녀온 이후 대단한 직업을 갖지 않고 결혼도 하지 않은 채 경기도의 작은 주택에서 농사를 지은 작물로 음식을 해 먹으며 고요히 홀로 살았다. 언젠가 이모의 집에 놀러 갔을 때 보았던, 들판의 높다란 옥수숫대와 이모가 해주었던 두부김치-이모는 두부를 기름에 지지지 않고 살짝 데쳤고, 김치는 들기름에 조물조물 버무렸다-요리는 지금도 여름이면 생각난다. 엄마의 친구는커녕 형제자매들 중 누구에게도 그다지 싹싹한 편이 되지 못하는 내가 M이모를 따랏던 것은 독특한 삶의 방식을 가진 그녀가 매우 영적인 사람이었기 때문일것이다. (중략)
이모와 한동안 연락이 끊긴 것은 어떤 이유였던가? 자세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오랜만에 내가 이모에게 연락했을 때 이모는 경기도의 집을 처분하고 서울에서 살고 있다고 했다. "서울 어디에 살고 있어요?" 나는 뜻밖이라는 생각에 이모에게 다시 물었다. 내가 알기로 이모는 서울에서 집을 구해 살 수 있는 형편이 되지 못했다. "아주 재미있는 동네야." 이모는 그렇게 말하며 "언제 너도 한번 놀러 오렴. 좋아할 것 같은데"라고 답을 했다. 그로붜 몇달 후, 나는 이모의 동네로 이사했다. 이모가 살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었지만, 이모가 살고 있다는 사실이 결정에 조금도 영향을 미치니 않았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서울의 중심가에서 그렇게 멀지 않은데도 어쩌다 대중교통이 끊겨 택시를 타고 귀가하면 오랫동안 택시업에 종사한 기사들조차 이런 곳이 있는 줄은 몰랐다고 말하는 이 동네는 한국전쟁 이후 서울로 모여든 가난한 사람들이 성곽 아래에 무허가 주택을 지으면서 형성되었다. 2004년 철거식 재개발 예정구역으로 지정되었으나 문화재인 성곽 보존을 위해 개발사업이 어려워지면서 점점 슬럼화되었던 이 동네는 서울시의 정책이 무분별한 개발을 지양하고 주민들의 주거환경을 개선하는 방향으로 바뀌면서 대안적 개발모델로 부상했다. 동네에 도시가스가 들어오고 하수관이 교체되기 시작한 2013년을 기점으로 주민들은 정부의 지원을 받아 지붕을 교체하고 단열공사를 해 이전보다 훨씬 나은 환경에서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기 시작했다. 개발을 기다리는 동안 방치되었던 빈집들에 예술인들이 자리를 잡기도 했다.
폭이 좁은 골목과 낮은 집들. 검은 개 두마리가 성곽길을 따라 사이좋게 뛰어다니고, 폭우가 그치면 성곽 위로 솟은 나무들 사이에서 새들이 부산스럽게 지저쥐고, 주민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노인들이 평상이나 골목의 벤치에 앉아 살아온 날들처럼 길게 늘어진 하오의 볕을 하염없이 쬐는 이 동네를 나는 좋아한다.
물론 처음부터 이 동네에서의 생활에 내가 쉽게 적응한 것은 아니다. 옛 성곽이 보이는 풍경에 반하고 단독주택에 살아보고 싶다는 마음이 앞서 연고도 이모 말고는 딱히 없는, 그전까지는 단 한번도 와본 적 없는 동네로 무턱대고 이사한 것까지는 좋았다. 하지만 나는 이 동네의 밤이 내게 친숙한 도시의 소음 대신 놀랄 만큼 두꺼운 적마으로 가득 찬다는 사실을 미처 몰랐다. 이제는 익숙해졌지만 이사한 처음 며칠 밤 동안은 그 적막이, 그리고 불시에 적마을 깨고 방 안까지 흘러들어오는 이웃들의 웅성거림이나 발걸음 소리, 가래 뱉는 소리나 사람들끼리 주고받는 욕설 같은 생활소음이 무서워 잠을 설쳤다.
아주 어렸을 때를 제외하고는 어떤 형태로든 공동주택에서만 살았던 내게 이 동네에서의 생활은 여러가지 의미에서 당황스러움의 연속이었다. 이곳에서의 생활을 통해 내가 배운 것이 있다면 그것은 산다는 행위가 관념이 아니라 좀더 구체적인 것들, 물질성이랄지 육체성을 가진 것들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이다. 이곳에서는 눈이 오면 허리가 아플 때까지 집 앞의 골목을 쓸어야 하고(겨울마다 서울에는 눈이 얼마나 자주 오는지!) 1년에 한번씩 정기적으로 정화조 청소업체를 직접 불러 나의 배설물 냄새를 맡아야 한다. 벽의 페인트가 벗겨지면 다시 칠해야 하고, 문고리가 고장 나거나 방충망에 구멍이 나면 임시방편으로라도 어떻게든 수리를 해야 하며, 외벽의 갈라진 틈을 타고 제법 무성히 자라는 잡초들을 때마다 내 손으로 뽑아야 한다. 주거하는 이와 관리하는 이가 분리되어 있기 때문에 거주의 공간이 아니라 경제적 가치를 지닌 재화로 인식되는 아파트와 달리, 이 동네에서 집은 삶의 공간이다. 동네에서의 하루하루는 집이든 인간이든 간에 만물이 시간과 함께 서서히 마모되는 것은 자연의 섭리이며, 육체적인 노동과 시간 그리고 정성을 쏟는 돌봄을 통해서만 우리가 모든 종류의 소멸을 가까스로 지연할 수 있을 뿐이라는 진실을 내게 알려준다. 그리고 어떤 공간이 누군가에게 특별한 장소가 된다면 그것은 다름 아니라 오감으로 각인되는 기억들의 중첩 때문이라는 사실도.
어떤 장소에 대한 기억. 경제성장에 취해 고층 건물과 아파트를 짓기에 바쁘던 시대에 태어나 인생의 대부분을 대도시만 전전하며 성장한 나의 유년 시절 기억 속에는 복잡한 골목이나 다닥다닥 붙어 있는 낡은 가옥들은 없다. 시골 풍경을 <전원일기>나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 같은 티브이 프로그램을 통해서나 엿보면서 어린 시절을 지나온 나에게 향수를 자극하는 장소는 그런 것들이 아니라, 주한미군 부대에 인접한 아파트 단지의 주차장-경비 아저씨의 눈을 피해 아스팔트 위에 돌멩이로 금을 긋고 땅따먹기를 하거나 롤러스케이트를 타다가 넘어지곤 했다-아니면 단지 내의 놀이터 같은 곳이다. 하지만 현재 서울에 사는 사람들 중에는 좁은 골목과 비탈, 볕 좋은 날 지붕 위에서 빨래나 우거지를 말리는 집들이 있는 풍경을 유년의 장소로 기억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그리고 평소에는 도시의 편리함과 쾌적함을 온몸으로 누리며 사는 그런 사람들 중 어떤 이들, 도시의 지나친 매끈함이 자신을 실향민으로 만든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옛 골목과 낡은 집으로 이루어진 우리 동네는 꽤 좋은 구경거리인 모양이다. 날씨가 좋은 날이면 사람들이 우리 동네로 놀러 와 골목 여기저기에서 사진을 찍는 것을 보면 말이다. 주민들의 말에 따르면 한때 인근 대학의 학생들이 자원봉사 활동의 일환으로 낡은 집들에 벽화를 그려주면서 동네가 조금 알려진 탓이라고 한다.
우리 동네 주민들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외부인들의 관심이 높아져 정주민들이 떠나갈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는 것이다. 벽화마을이라든가, 하는 이름으로 동네가 관광화 혹은 상업화되면서 결국 정주민들이 떠나게 되는 전례를 많이 보아왔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주민들은 언젠가부터 벽화를 지우고, 젠트리피케이션을 방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마을 주민들의 동의 없이는 동네에서 장사할 수 없다는 규정을 정한 것도 바로 그런 이유다. 그 덕분에 우리 동네는 변하고 있지만 매우 더디게 변하고 있고, 사실 내가 이사 와 살기 시작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거의 변하지 않았다. 이곳에는 이곳만의 속도와 리듬으로 이루어진 본연의 질서가 있고 주민들은 그것을 대체로 존중하며 산다.
부모를 떠나 독립적인 공간을 갖는 대부분의 이들이 그렇겠지만 나 역시 처음 나의 집이 생겼을 때 친구들을 마음껏 초대할 수 있으리라는 점 때문에 제법 설렜다. 어쩌다 외국에 가 있게 되면 친구들이 재워주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집이 생긴 이후 나는 외국에서 친구들이 놀러 오면 나 또한 그들을 재워주고 싶었던 것이다. 나의 집에 방문한 친구들은 대부분 우리 동네와 쉽게 사랑에 빠졌고, 내가 사는 동네와 집을 좋아하는 나는 그때마다 기뻤다. 하지만 솔직히 고백하자면 지금까지 나는 한국인 친구들은 누구도 집에 초대하지 못했다. 그것은 옆집에 사는 아저씨가 골목에 쌓아놓은 시멘트 더미와 파이프, 세면대나 변기 따위의 것들 때문이다. 벽을 공유하는 탓에 아저씨의 짐들을 지나치고 난 후에야 나의 집으로 들어올 수 있는데, 친구들이 그 앞을 지나는 장면을 상상하면 나는 항상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고 어처구니없게도 내 삶의 방식이 '평가'당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 사로잡혔다. 물론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막 이사를 왔을때 나는 그 짐들이 대체 무엇인지 몰랐고 미관상 너무 좋지 않았기 때문에 주민센터에 바로 전화를 걸었다. 신고를 하고 나서 몇 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그 짐들은 거짓말처럼 모두 사라졌다. 이웃집 아저씨는 집을 수리하는 소규모 사업을 하는 분인데, 철거작업 끝에 나온 폐기물을 매번 처분할 경제적 여력이 되지 않아 트럭 하나를 부를 수 있을 만큼 모일 때까지 집 앞에 쌓아둘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그 후의 일이다. 친구들에게 집을 보이지 못할 정도로 그것들이 싫고 지금도 신고만 하면 어저씨의 포대들과 잡동사니들이 순식간에 모두 사라질 것을 알지만, 내가 더이상 주민센터에 민원을 넣지 않는 이유는 이제는 나도 아저씨가 본인만의 리듬으로 그 모든 것들을 다 처분하는 날이 주기적으로 찾아온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나보다 먼저 이 동네에 살았던 이가 다른 주민들과 더불어 살면서 만들어온 질서와 생태계를 존중하며 천천히 변화를 만드는 것. 이 동네에 살기 시작한 이래 나는 그런 일들에 관심이 생겼다.
최근에 두명의 친구를 만났다. 한 친구는 집이라는 것이 재테크의 수단이라는 사실을 최근에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는 말과 함께 나 역시도 지금처럼 사는 것을 뼈저리게 후회할 날이 오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또다른 친구는 25년동안 갚아야 하는 대출을 받아 최근 아주 비싼 지역에 집을 샀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30평보다는 40평에, 40평보다는 50평에 살고 싶은 것이 인간의 당연한 욕구가 아니겠느냐고 내게 물었다. 그런 이야기를 듣고 나서 마을버스조차 다니지 못하는 비좁은 비탈을 걸어 집으로 돌아올 때면 내가 모자란 인간인 것은 아닐까 하는 회의감이 밀려온다. 어쩌면, 하지만 약간의 시간이 더 지나고 나면 어차피 나란 존재는 후회가 습관인 인간이므로, 아직까지는 조금만 더 이 불편함을, 풍요롭게 흘러넘치는 고요와 시시로 찾아오는 뜻밖의 소란을, 방바닥에 누워 창밖을 내다보면 바람에 흔들리는 커다란 나무의 우듬지를, 옥상에서 맥주를 마시며 감상하는 노을의 시간을, 먼 곳의 개 짖는 소리와 담벼락 아래의 고양이 우는 소리를 사랑하고 싶다는 마음이 다시 고개를 들고 만다.
이사를 하던 날, 나의 집에 와서 책 정리를 같이 해주었던 M이모. 무슨 책이 이렇게까지 많니, 작가는 다 이러니,라고 말했던 이모. 이삿짐을 나르는 직원분들을 위해 생수를 사러 갔을 때 나와 함께 언덕을 내려가 동네 슈퍼의 위치를 알려주었던 이모. 이사 온 것을 축하한다며 두루마리 휴지를 사 가지고 놀러 와 옥상을 구경하자 말하고, 어느 날은 성곽을 따라 동대문까지 가는 길을 알려준다고 하더니 숨이 차다며 발걸음을 멈추던 이모는 더이상 이 세상에 없다. 내가 조금만 더 주의력이 깊은 사람이었다면, 나 아닌 다른 것들에 애정 어린 관심을 더 기울일 줄 아는 사람이었다면 나는 이모의 몸이 어딘가 이상하다는 것을 미리 알아챘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불행히도 그런 사람이 되지 못했다. M이모가 떠난 이후, 나는 이모가 살던 집이 있는 골목 쪽으로는 한동안 고개를 돌리지 못했다. 집의 있음이 이모의 없음을 눈부신 처연함으로 증명하리란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용기를 내어 이모가 살았던 집, 그 무엇도 허물어지지 않아 아직 그대로 있는 그 집 쪽으로 고개를 돌린 것은 그로부터 1,2년 후의 일이다. 잊힌 줄 알았는데, 구불구불한 골목 끝의 이모 집을 보는 순간 이모와 함께 지낸 단 몇개월의 시간이, 이웃이 된 것을 축하할겸 시장으로 생선구이를 먹으로 가자고 했으나 이모가 피곤하다고 해서 끝내 지켜지지 못했던 약속이, 이모에게 홍삼을 가져다주었더니 답례라며 건네주 자몽의 새콤한 맛 같은 것들에 대한 기억이 일제히 떠올랐다.
서울의 많은 장소들이 그렇듯이 언젠가는 이 동네도 흔적 없이 사라지고 세련된 건물들, 생존을 위한 요구와 필요만이 가장 편리한 방식으로 해결되는 공간들로 대체되는 날이 올까? 아마 올 것이다, 불행하게도. 바람이 있다면 그런 날이 여름의 중앙을 통과하는 민달팽이처럼 천천히 다가오기를. 미래 쪽으로만 흐르는 시간은 어떤 기억들을 희미하게 만들어버리기도 하지만, 장소는 어김없이 우리의 기억을 붙들고 느닷없이 곁을 떠난 사랑하는 것들을 우리 앞에 번번이 데려다놓는다.
<아주 오랜만에 행복하다는 느낌>, 백수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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